01‘1919.3.1 서울’을 말하다 - 1

최은희... 3월 1일 ‘파고다 공원 만세 시위’에 참여한 일제 강점기 최고의 여성 언론인.
1919년 3월 1일, 서울 만세 운동의 생생한 기억과 증언을 그녀가 작고하기 한 달 전 KBS와 인터뷰를 통해 남겼다.


최은희... 3월 1일 ‘파고다 공원 만세 시위’에 참여한 일제 강점기 최고의 여성 언론인.
1919년 3월 1일, 서울 만세 운동의 생생한 기억과 증언을 그녀가 작고하기 한 달 전 KBS와 인터뷰를 통해 남겼다.

최은희... 3월 1일 ‘파고다 공원 만세 시위’에 참여한 일제 강점기 최고의 여성 언론인.
1919년 3월 1일, 서울 만세 운동의 생생한 기억과 증언을 그녀가 작고하기 한 달 전 KBS와 인터뷰를 통해 남겼다.

15살의 나이에 만세 시위를 계획, 실행한 여장부 민옥금. 그녀가 공주교도소에서 직접 만난 유관순 열사와 나눈 얘기가 담겨 있다.

1946년 3월 1일, 미국과 소련의 군정으로 해방 이후 처음으로 맞이한 3.1운동 27주년은 남과 북이 따로 경축식을 치르게 된다. 이승만과 김구 그리고 미 군정 사령관 하지의 모습이 보인다. 북측 경축식에서는 젊은 모습의 김일성이 태극기 속에 등장하는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1919년 일제가 저지른 가장 잔인한 만행 가운데 하나인 경기도 화성 제암리 학살 사건.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전동례 할머니가 생존 당시 남긴 학살에 대한 증언을 담았다.

제암리 학살 희생자에 대한 유해 발굴은 사건이 발발한 지 63년, 해방된 지 36년이 지난 1982년에서야 이뤄졌다. 당시 제암리 유해 발굴과 합동 위령제 관련 뉴스입니다.
3.1운동 100주년 특집
‘KBS 3.1운동 100주년 특집’에 쓰인 자료는 ‘독립운동사’ 제2, 3권(국가보훈처, 1972)과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제19, 20권(독립기념관, 2009)의 3.1운동 서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두 책에 서술된 독립만세 내용을 일시와 장소에 따라 나눠 추출한 뒤 시위, 철시(동맹휴학, 파업), 만행 등으로 사건을 하나하나 정리하였으며, 각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도 한분 한분 정리했습니다.
3.1운동 관련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 서훈을 받은 분임에도 위 두 책에 관련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서술이 없는 경우에는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공적 조서를 토대로 관련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국가기록원 ‘독립운동관련 판결문’에 당시 재판기록이 있는 인물은 형량이 기재된 가장 상급심의 판결문을 인물 정보에 연결했습니다. 또한 이 분들과 함께 같은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지만 두 책이나 공훈록에 언급되지 않은 인물도 추가했습니다.
독립기념관 ‘국내 독립운동·국가수호 사적지’ 홈페이지에 3.1운동 사적지 정보가 있을 경우, 각 사건에 해당 페이지를 연결했습니다.
정보 확인을 위해 공훈전자사료관,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지적아카이브 홈페이지도 참고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태화관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1919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발생한 3.1운동 관련 사건을 정리했습니다.
동일 날짜, 동일 지역(리(里) 단위) 내에서 시간대만 다르게 발생한 사건은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했습니다.
‘독립운동사’와 ‘한국독립운동의 역사’에 서술된 이름(한자)과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이름(한자)이 다를 경우,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표기를 따랐습니다.
‘만세 지도’ 페이지 오른쪽 상단에 날짜별로 집계된 참여인원은 ‘독립운동사’와 ‘한국독립운동의 역사’에서 밝힌 규모를 따르되, 참여인원 규모가 서술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참여인원 규모가 적시된 사건들의 중앙값인 200명을 적용해서 집계했습니다. 수천 명, 수백 명, 수십 명과 같이 막연한 표현을 사용한 경우엔 사전적 정의(수천, 수백, 수십, 여러)를 준용한 최소값인 3000명, 300명, 30명으로 집계했습니다.
각 사건이 발생한 장소명과 행정구역명은 ‘독립운동사’와 ‘한국독립운동의 역사’에 기술된 과거 지명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다만 ‘100년 전 우리동네’ 페이지의 지역별 조회 기능에서는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2019년 현재 행정구역 분류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북한 지역은 조회 기능에서도 책에 서술된 것과 같은 과거 행정구역 분류 체계를 그대로 따랐습니다.만세 시위의 정확한 위치 표시를 위해 1910~1930년 사이 일제가 작성한 ‘1/50000’ 지도를 참고하였습니다.장소를 옮겨가며 진행한 시위는 대표적인 장소 한 곳을 지도에 표시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세부 장소명 대신 군/읍/면/리 등의 행정구역 단위로 장소가 기술된 경우에는 각 행정구역의 중앙, 읍/면사무소 소재지 혹은 시장(장터)에 위치를 표시했습니다. 다만 사건 발생 장소가 명확하게 기술되지 않은 경우 지도상 위치가 실제 사건이 발생했던 장소와 다를 수 있습니다. 가령 ‘OO리 뒷산에서 봉화 시위가 있었다’와 같은 경우입니다. 독립기념관의 ‘국내 독립운동·국가수호 사적지’ 사이트에 등장하는 3.1운동 시위 장소의 경우엔 이 곳에 적힌 주소지를 그대로 따라 위치를 표시했습니다.확산의 주역들’ 페이지의 관계망은 ‘독립운동사’와 ‘한국독립운동의 역사’에 서술된 내용만을 기초로 정리했습니다. 따라서 실제 3.1운동의 전국 확산에 기여한 인물임에도 ‘관계망'에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페이지에서 활용한 자료는 ‘독립운동사’와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국가보훈처 ‘공훈록’ 등을 기초로 정리한 것입니다. 두 책 및 공훈록 등에 서술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사료, 가령 일제가 작성한 ‘소요사건관계서류’와 같은 곳에만 기술된 사건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1919년 3.1운동 관련 시위와 참여 인원은 이 페이지에서 정리한 것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속적인 연구와 발굴, 자료 취합이 필요한 부분입니다.자료와 관련하여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kbsdataroom@gmail.com으로 알려주십시오. 검토 후 반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