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 1861 - 1947

    권동진權東鎭

  • 1868 - 1943

    권병덕權秉悳

  • 1869 - 1935

    길선주吉善宙

  • 1877 - 1948

    김병조金秉祚

  • 1876 - 1950

    김완규金完圭

  • 1864 - 1936

    나용환羅龍煥

  • 1872 - 1951

    나인협羅仁協

  • 1885 - 1941

    박동완朴東完

  • 1866 - 1927

    박준승朴準承

  • 1864 - 1940

    백용성白龍城

  • 1861 - 1922

    손병희孫秉熙

  • 1875 - 1950

    신석구申錫九

  • 1872 - 1939

    신홍식申洪植

  • 1869 - 1933

    양전백梁甸伯

  • 1862 - 1919

    양한묵梁漢默

  • 1864 - 1953

    오세창吳世昌

  • 1880 - 1960

    오화영吳華英

  • 1878 - 1937

    유여대劉如大

  • 1886 - 1981

    이갑성李甲成

  • 1873 - 1956

    이명룡李明龍

  • 1864 - 1930

    이승훈李昇薰

  • 1858 - 1925

    이종일李鍾一

  • 1856 - 1930

    이종훈李鍾勳

  • 1869 - 1932

    이필주李弼柱

  • 1864 - 1948

    임예환林禮煥

  • 1874 - 1937

    최성모崔聖模

  • 1879 - 1944

    한용운韓龍雲

  • 1865 - 1938

    홍기조洪基兆

  • 1869 - 1949

    홍병기洪秉箕

3.1운동 100년,

대한민국의 뿌리가 되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민족운동 3.1운동.
선열들이 외친 ‘함성’과 흘린 ‘피와 눈물’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알고 있나요?
KBS는 대한민국의 뿌리로 자리 잡은 100년 전
선열들의 거대한 함성과 발자취를 정리하고 발굴하고
기록하여 여러분과 함께 기념하고자 합니다.

3.1운동 100주년 특집

누가 어떻게
만들었나?

01자료의 출처

‘KBS 3.1운동 100주년 특집’에 쓰인 자료는 ‘독립운동사’ 제2, 3권(국가보훈처, 1972)과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제19, 20권(독립기념관, 2009)의 3.1운동 서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두 책에 서술된 독립만세 내용을 일시와 장소에 따라 나눠 추출한 뒤 시위, 철시(동맹휴학, 파업), 만행 등으로 사건을 하나하나 정리하였으며, 각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도 한분 한분 정리했습니다.

3.1운동 관련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 서훈을 받은 분임에도 위 두 책에 관련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서술이 없는 경우에는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공적 조서를 토대로 관련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국가기록원 ‘독립운동관련 판결문’에 당시 재판기록이 있는 인물은 형량이 기재된 가장 상급심의 판결문을 인물 정보에 연결했습니다. 또한 이 분들과 함께 같은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지만 두 책이나 공훈록에 언급되지 않은 인물도 추가했습니다.
독립기념관 ‘국내 독립운동·국가수호 사적지’ 홈페이지에 3.1운동 사적지 정보가 있을 경우, 각 사건에 해당 페이지를 연결했습니다.
정보 확인을 위해 공훈전자사료관,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지적아카이브 홈페이지도 참고했습니다.

02자료의 기준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태화관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1919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발생한 3.1운동 관련 사건을 정리했습니다.
동일 날짜, 동일 지역(리(里) 단위) 내에서 시간대만 다르게 발생한 사건은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했습니다.
‘독립운동사’와 ‘한국독립운동의 역사’에 서술된 이름(한자)과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이름(한자)이 다를 경우,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표기를 따랐습니다.

‘만세 지도’ 페이지 오른쪽 상단에 날짜별로 집계된 참여인원은 ‘독립운동사’와 ‘한국독립운동의 역사’에서 밝힌 규모를 따르되, 참여인원 규모가 서술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참여인원 규모가 적시된 사건들의 중앙값인 200명을 적용해서 집계했습니다. 수천 명, 수백 명, 수십 명과 같이 막연한 표현을 사용한 경우엔 사전적 정의(수천, 수백, 수십, 여러)를 준용한 최소값인 3000명, 300명, 30명으로 집계했습니다.

각 사건이 발생한 장소명과 행정구역명은 ‘독립운동사’와 ‘한국독립운동의 역사’에 기술된 과거 지명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다만 ‘100년 전 우리동네’ 페이지의 지역별 조회 기능에서는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2019년 현재 행정구역 분류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북한 지역은 조회 기능에서도 책에 서술된 것과 같은 과거 행정구역 분류 체계를 그대로 따랐습니다.만세 시위의 정확한 위치 표시를 위해 1910~1930년 사이 일제가 작성한 ‘1/50000’ 지도를 참고하였습니다.장소를 옮겨가며 진행한 시위는 대표적인 장소 한 곳을 지도에 표시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세부 장소명 대신 군/읍/면/리 등의 행정구역 단위로 장소가 기술된 경우에는 각 행정구역의 중앙, 읍/면사무소 소재지 혹은 시장(장터)에 위치를 표시했습니다. 다만 사건 발생 장소가 명확하게 기술되지 않은 경우 지도상 위치가 실제 사건이 발생했던 장소와 다를 수 있습니다. 가령 ‘OO리 뒷산에서 봉화 시위가 있었다’와 같은 경우입니다. 독립기념관의 ‘국내 독립운동·국가수호 사적지’ 사이트에 등장하는 3.1운동 시위 장소의 경우엔 이 곳에 적힌 주소지를 그대로 따라 위치를 표시했습니다.확산의 주역들’ 페이지의 관계망은 ‘독립운동사’와 ‘한국독립운동의 역사’에 서술된 내용만을 기초로 정리했습니다. 따라서 실제 3.1운동의 전국 확산에 기여한 인물임에도 ‘관계망'에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03자료의 한계

이 페이지에서 활용한 자료는 ‘독립운동사’와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국가보훈처 ‘공훈록’ 등을 기초로 정리한 것입니다. 두 책 및 공훈록 등에 서술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사료, 가령 일제가 작성한 ‘소요사건관계서류’와 같은 곳에만 기술된 사건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1919년 3.1운동 관련 시위와 참여 인원은 이 페이지에서 정리한 것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속적인 연구와 발굴, 자료 취합이 필요한 부분입니다.자료와 관련하여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kbsdataroom@gmail.com으로 알려주십시오. 검토 후 반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