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당시 이 땅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독립 만세’를 외치다 목숨을 잃었을까? 앞선 기사 「3.1운동 순국, ‘553 vs 7,509’」에서 살펴봤듯이 많게는 7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시위 도중 현장에서 순국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 현장에서 목숨을 잃어 순국이 인정될 경우 보통 건국훈장 ‘애국장’ 이상의 서훈을 받게 된다.
반면 조선헌병대사령부 등 일본 측이 당시 3.1운동을 집계한 ‘조선소요사건일람표’에 따르면 시위 현장에서 사망한 사람은 3월1일부터 4월30일까지 모두 553명이다.(실제 일자별 시위 통계를 집계하면 사망자가 554명에 이른다.)
이와 관련해 취재팀은 국가보훈처가 공개하고 있는 공훈록 자료를 모두 조사하였다. 그 결과 일제 측 자료와 같은 기간에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현장에서 순국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훈을 받은 분들은 311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유관순과 같이 체포돼 옥중 순국하거나 고문 후유증으로 숨진 분들은 제외)
일제가 자인하고 있는 3.1운동 사망자 553명과 비교하면 서훈 받은 순국자가 242명이나 적다.

여기에다 취재팀이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 2권, 3권’ 및 ‘한국독립운동의 역사(독립기념관) 19권, 20권’에 등장하는 3.1운동 참여 인물들을 모두 정리·선별한 결과, 아직 서훈은 받지 못했지만 두 책 속에 만세 시위 현장에서 순국한 것으로 서술된 인물 81명을 찾아냈다.
하지만 서훈된 순국자 311명과 서훈되지 못한 채 책에만 등장하는 81명을 합치더라도 여전히 161명의 순국자는 아직 ‘이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가 남긴 ‘일람표’ 상의 사망자와 취재팀이 ‘국가보훈처 공훈록’과 위 두 책을 통해 정리한 순국자 수를 각 군별로 분류해 비교해 보았다.(3.1운동 당시 행정구역 기준)
그 결과 58개 군에서 일제가 집계한 사망자 수보다 서훈을 받은 순국자가 더 적었다. 특히 평안남도 맹산과 성천, 영원군 그리고 평안북도 삭주군 등은 수십 명씩 죽였다고 일제 스스로 기록에 남겼지만, 이 지역에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서훈을 받은 현장 순국자는 단 한 분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남북 분단으로 인하여 북한 지역은 순국자 조사와 서훈 신청 등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남한 지역도 26개 군에서(옛 행정구역 기준) 일제가 기록한 사망자보다 서훈을 받은 현장 순국자가 더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비록 서훈은 되지 못했지만 앞선 두 책에 이름이라도 등장하는 순국자를 합치더라도 여전히 19개 군에서는 일본이 자인한 사망자만큼 서훈은커녕 순국자의 이름조차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가령 경기도 양평군의 경우 일제는 1919년 3월과 4월 두 달 동안 시위대 11명의 목숨을 빼앗았다고 기록했지만 지금까지 서훈된 순국자는 3명 뿐이다. 나머지 8명은 위 두 책에도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이복재 양평 3.1운동 기념사업회 이사
그나마 한국전쟁 시절인 65년 전, 일본에 대한 배상 청구를 목적으로 급하게 만들어진 ‘3.1운동 피살자 명부’가 몇년 전에 발견돼 희생자들의 이름이 추가로 공개됐다. 하지만 이름만 나왔을 뿐 가족이나 주소지 등 분명한 신원이 규명되지 않아 아직 순국자로 서훈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적어도 일제가 학살을 자인한 553명만큼은 순국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3.1운동 100년을 맞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 다음은 이름이 알려지거나 확인된 3.1운동 현장 순국자와 일제가 기록한 조선소요사건일람표 상의 시위 현장 사망자를 지역별로 구분해 비교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