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1일...
독립만세 시위를 벌인 곳은 비단 서울(경성)만은 아니다. 평양과 진남포, 안주, 의주, 선천 등 평안도 지방과 함경남도 원산 그리고 황해도 해주에서도 3월1일 서울과 같은
시각에 독립선언식과 만세 시위가 전개됐다. 서울 이남으로는 경기 수원에서 3월1일 만세 운동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시작된 만세 시위는 삽시간에 전국의 거의 모든 지역으로 퍼졌다. 기미년의 독립만세 시위는 어떻게 전국적인 확산에 성공했을까?

3.1운동이 전국적인 민족운동으로 확산한 배경에는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진행된 애국지사들의 치밀한 사전 준비와 노력이 있었다.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은 3.1운동에 대한
가장 방대한 저서인 ‘독립운동사’ 및 ‘한국독립운동의 역사’를 바탕으로 3.1운동의 시작과 전개, 전국 확산에 기여한 행적이 서술된 인물들만을 뽑아내 위와 같은 네트워크
지도를 만들었다.
3.1운동 확산 인물관계망에 등장하는 사람은 모두 437명으로 이들은 주로 독립 만세 시위 소식을 알리거나 독립선언서를 각 지역에 전달함으로써 지방에서도 만세 시위가
확산하는데 주된 역할을 한 인물들이다. 그렇기에 각 지역마다 시위를 주도한 인물들이 이 지도에는 등장하지 않을 수 있다.
이승훈, 김상열

기독교 지도자인 이승훈(李昇薰)은 평안남북도 3.1운동의 중심에 있다. 이승훈은 2월초부터 평양과 경성을 오가며 평안도 지방의 만세 시위를 조직했다. 평양과 진남포 지역은 윤원삼, 안세환 등을 통해, 의주와 선천 지역은 양전백, 유여대, 송문정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준비했다. 또한 김상열(金商說)은 보성사 이종일(李種一)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넘겨받아 평안도 일대에 배포했다.
안상덕

함경남도와 강원도는 안상덕(安商悳)을 거쳐 독립선언서가 배포됐다. 안상덕은 김용환, 강인택 등을 통해 함경남도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했고, 강원도는 이태윤, 김현일을 통해 배포했다.
인종익

충청북도와 전라북도 방면은 천도교 측의 인종익이 독립선언서 배포를 맡았다. 인종익(印宗益)은 이종일로부터 독립선언서 2000매를 받고는, 3월1일 전북 전주 천도교구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이튿날인 3월2일에는 충북 청주에 도착해 직접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 일본 군경에 붙잡혔다.
손병희

민족대표 33인의 대표인 손병희도 직접 독립만세 시위의 전국 확산에 나섰다. 홍명희 등 직접 만나 충북 지역의 3.1운동을 미리 준비케 하였고, 황해도 평산, 금천과 함남 이원, 함북 길주 지방의 3.1운동 시작에도 직접 관여하였다.
이갑성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이갑성은 김창준에게 받은 독립선언서 가운데 400매를 당시 세브란스 의학생이던 이굉상(이용상)에게 주고는 대구와 경남 마산의 교회에 배포케 하였다. 또 배동석을 경남 마산과 김해 지역에 파견해 독립 만세 시위를 함께 할 동지를 규합하도록 하였다.
한용운

불교계의 대표인 만해 한용운은 일찌감치 부산 범어사를 직접 찾아 원로스님들과 만세시위 계획을 논의하였다. 또한 3.1운동이 시작되자 이 곳 출신인 김법린을 파견해 독립선언서를 전달하고 만세 시위를 벌이도록 하였다. 만해는 경남 양산 통도사에는 오택언을 보내 만세 운동을 담당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