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관련된 인물로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유관순’ 열사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의 대표적인 위인으로 알려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어린 나이에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순국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우내 장터 시위에 앞장 선 1919년 4월1일, 당시 유관순의 나이는 정확히 몇 살이었을까?
유관순의 제적부를 통해 확인한 결과 당시 만으로 17살이 채 안된 나이였다.

유관순 열사 제적부
또 옥중 순국한 날짜는 1920년 9월28일로 유관순은 18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삶을 불꽃처럼 마감했다.
그렇다면 만 18세도 안된 나이에 순국한 유관순 열사보다 더 어린 나이에 숨진 애국지사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있다’이다.

독립운동사략(1920) 40쪽. 김병조.
‘안정명’, 평안북도 철산 만세 시위에서 일제의 총탄에 맞아 현장 순국했다. 당시 나이 13살(만 12살)로 어머니 품안에서 숨져갔다고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한 김병조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사략-상편(1920년)’에 나온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2003년 애국장을 수여했다.
순국자는 아니지만 3.1운동 참여자로 지금까지 가장 어린 나이에 만세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이름까지 확인된 사람은 당시 경성부 마포에 살던 ‘김선옥(Kim
Sunok)’이다.

‘검은 우산 아래서(2001) 17쪽. 힐디 강.
김선옥은 저자 ‘힐디 강’과의 인터뷰에서 1919년 3월1일 당시 10살(만 9세)의 나이로 만세 시위에 참여한 기억이 있다고 증언하였다.
3.1운동 참여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서훈된 분들 가운데 당시 가장 나이 어린 애국지사는 ‘한이순(韓二順)’이다. 충남 천안 입장면 ‘광명여학교’에 다니면서 1919년 3월
20일 양대리 장터 시위를 주도했다가 징역 1년의 옥고를 치렀다.

한이순 선생 공훈록. 국가보훈처
서류를 통해 확인된 생년월일은 1906년 11월 14일 생으로 당시 만 12살이었다.(한이순 신분장지문조회서 기록) 다만 판결문과 형사사건부에는 재판 당시 나이가 18살로
기재돼 있다.
이렇듯 각종 사료와 기록은 어린이와 청소년도 일본 군경의 무자비한 학살과 만행의 예외가 아니었음을 또렷이 증언하고 있다.